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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역사] 구찌(GUCCI) 브랜드는 어떤 탄생배경을 가지고 있을까? part.2카테고리 없음 2021. 3. 4. 19:40반응형
안녕하세요 ROOKIE입니다.
지난 글에 이어서 구찌(GUCCI) 브랜드 역사에 대해서 계속해서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953년 구찌(GUCCI) 창립자인 구찌오 구찌는 72세에 세상을 떠나게 되고 그의 아들들인
알도, 로돌프 구찌 첫째, 셋째 형제가 경영을 하게 됩니다. 특히 첫째인 알도 구찌는
특유의 감각으로 구찌 브랜드를 성공적으로 이어나갔으며 구찌오 구찌의 이름을 딴
GG로고를 개발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는데 큰 기여를 하였으면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구찌로고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구찌의 행보는 미국까지 매장을 오픈하게 되고 미국 시장을 진출한
이탈리아 최초의 브랜드라는 타이틀까지 얻게 되는 등, 세계적으로 진출하면서
승승장구의 행보를 보이는 듯하였으나 1982년 구찌 가족 경영진들의 논의 끝에 로돌프 구찌가 디자인부터 생산, 공급 모든 단계에 관여하는 경영권을 가지도록 결정된 후 1년 뒤 루돌프 구찌가 사망하고
그의 아들인 마우리찌오 구찌가 경영권을 물려받으면서 구찌가에 조금씩 분열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유는 대표적으로 회장이 동의하지 않았는데 알도 구찌의 아들 파울로 구찌는 파울로 구찌라는 이름하에 핸드백, 액세서리, 와인 등을 판매하는 저렴한 브랜드를 만들면서 구찌 브랜드의 이미지가치를 떨어트리는 행보를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결과로 구찌는 경영난까지 이르게 되자 경영권 전쟁을 하면서 승리한 마우리초는 경영권은 다시 가져왔고
당시 파울로 구찌의 지분은 인베스트코프(INVESTCORP)라는 투자회사가 인수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인베스트코프(INVESTCORP)는 전문 경영인 도미니코 데 솔레(Domenico De Sole)를 취임하면서
구찌 브랜드를 새로이 탈피하는 계기를 겪게 됨과 동시에
90년대 뉴욕 출신 젊은 디자이너 톰포드를 영입하게 됩니다.
1990년 당시 29세의 톰포드는 디자인을 맡으면서 1994년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에 오르게 되며
GUCCI를 트렌디한 명품 브랜드로 성장시키게 됩니다.
뛰어난 사업가와 천재 디자이너의 노력으로 구찌는 제2의 전성기를 보는듯하였으나
1995년 미우리찌오 구찌가 전처의 총에 맞아 목숨을 잃게 되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하게 됩니다.
이후에 구찌는 1999년 입생로랑, 보테가베네타, 발렌시아가 등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를 보유한
케링 그룹과 제휴를 맺으면서 독립 브랜드가 아닌 럭셔리 대기업 소속이 됩니다.
계속해서 발전을 하며 구찌는 성장하다가 2004년 천재적인 디자이너 톰포드와, 도미니코 데 솔레(Domenico De Sole)는
구찌그룹 대주주와 의견이 좁혀지지 않게 되자 사임을 하게 됩니다.
그 당시 구찌 가방의 디자이너였던 프리다 지아니니 (Frida Giannini)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취임하면서
4년간 46% 매출을 기록하며 2007년 닐슨의 세계에서 가장 갖고 싶은 품 브랜드에 선정되었습니다.
이후 2009년 프리다 지아니니 (Frida Giannini)의 남편 임명된 후 매출이 감소하는 등 점차 뒤처져가는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결국 둘은 2014년 계약이 종료되었고 계속해서 부진해가던 구찌는 2015년 13년 동안 묵묵히 일하면서 아무런 이슈 없는
알레산드로 미켈레 (Alessandro Michele)를 디렉터로 임명하는 파격적인 결정을 하게 됩니다.
아무것도 알려진 바가 없었으며 유명하지도 않았던 알레산드로 미켈레 (Alessandro Michele)는 많은 사람들의 우려와는
반대로 패션계를 뒤엎는 크나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기존의 올드하고 식상했던 구찌를 자유분방하고 신세대 느낌의 이미지로 탈바꿈된 것입니다.
그로 인하여 젊은 층들의 고객들이 늘기 시작하면서 스트릿, 힙합패션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되면서
명품 브랜드로써 자리를 매김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영국 브랜드 파이낸스에서 선정한 2020년 럭셔리 브랜드 가치 순위에서 2위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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